희망봉에서 온 엽서
대프리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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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스아프리카 | Date 2018-07-23 14:25:47 | hit 1,927 |
‘역대급 더위’란다.
찜통 같은 더위로 종일 땀이 줄줄 흘러 내린다.
해마다 무더위가 찾아오면 사람들은 ‘보다 보다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난 일을 잘 잊는다.
이규보의 한시 <고열> 중 한 구절을 보자.
‘혹독한 무더위가 불보다 심해
천 개의 화로 붉은 숯을 부채질 하듯’ 이란 표현이 나온다.
얼마나 더웠으면 동시에 천 개의 화로에서 시뻘건 불덩이를 부채질 하듯 한다고 그랬을까?
본래 시인들은 ‘뻥’이 심하다지만 맹폭을 연상케 한다.
여름이면 생각 나는 이야기.
어릴 때 뛰어 놀던 집 앞에는 제일은행 여수지점이 있었다.
서울 명동 입구에 있는 한국은행처럼 일제 때 지어진 화강석 건물이었다.
은행은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그 시절 최고의 피서지였다.
당시 여수 시내에서 에어컨이 나오던 곳을 몇 개의 은행 외에는 나는 더 알지 못한다.
나와 아이들도 그곳에 들어가 더위를 피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평소 지은 죄가 너무 많았다.
은행에는 높이 2미터, 폭 30센티 정도의 붉은 벽 담장이 있었고 우리는 그 담 위를 뛰어 다녔다.
담 위에 올라가 은행 안을 들여다 보며 야유를 보냈고 골이 난 수위 아저씨는 아이들을 때려 잡겠다고 뛰어 다녔다.
아이들은 빨랐고 우리가 잡히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제 발로 은행에 걸어와 수위 아저씨 시야에 포착되는 때가 있었다.
그날은 더운 날이다.
뙤약볕에 놀던 아이들이 꽤재재 벌건 얼굴로 그 귀한 은행 에어컨 바람을 찾아 온 것이다.
손님도 아닌 녀석들이 왔으면 정숙해야지 소란을 피우니 수위 아저씨에게 잡혀 터졌다.
그래도 더운 날 아이들은 다시 은행으로 잠입했고 수위에게 잡혀 또 터졌다.
지금은 너무도 흔한 물건 에어컨, 내 생애 최초 최고의 에어컨 바람은 그때 그 은행의 시원한 바람이다.
사람들은 유난히도 더운 대구를 ‘대프리카'라고 부른다.
얼마나 더우면 그랬을까만 더위에 무조건 아프리카를 끼워 넣는 일은 맞기도, 틀리기도 하다.
아프리카는 대륙이지 국가가 아니므로 더운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다.
남부 케이프타운에서 북부 튀니지까지 거리는 1만 1천 km가 넘는다.
이 큰 대륙 전체가 더울 수 있을까?
아프리카 여행지에서 가장 많이 찾는 케이프타운 여름 평균은 섭씨 25도다.
이 정도 기온은 우리나라 봄 날씨다.
더욱 매력적인 것은 여름에도 습도가 없는 날씨다.
케이프타운을 찾는 여행객들이 제일 많은 시간도 여름이다.
더위에 아프리카를 연상하는 것은 ‘아프리카는 덥다’라는 잘못된 편견일 뿐이다.
고국의 이 더위는 8월 중순이 지나야 풀릴 것이라 한다.
그 사이 사이에, 생각만 해도 시원한, 더위에 지친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는 일이라도 생기면 좋겠다.
시원한 소나기 한 줄기 같은 시간 말이다.
남은 무더위 건강하게 잘 건너 가시면 좋겠다.
그런데 지금 겨울인 케이프타운에도 무슨 일인가 싶다.
요 며칠 연일 봄 같은 날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