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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행 중 만날 수 있는 위도선 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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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스아프리카 | Date 2017-01-23 21:30:25 | hit 2,167 |
내가 나고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향 여수는 여수 반도의 끝이다.
반도의 끝이라 배나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더 남쪽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지금은 인근 섬들을 잇는 연륙교가 여러 개 생겼지만 어린 나이에도 나는 그게 되게 갑갑하였다.
중학생이 되고는 얼마간의 돈이 생기면 부모님 몰래 나 홀로 상행선 버스나 기차를 탔다.
주변 도시 순천이나 광주를 당일치기로 떠났다.
혼자 집을 나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다.
그렇게 만난 세상은 크고 황홀했다.
맨 처음 낯 선 도시에 발을 디디던 날이 생각난다.
길을 잃을까 봐 내린 곳에서 뱅뱅 돌며 떨었던 기억.
정거장에서 멀리 떠나질 못하고, 걸어 온 길을 뒤돌아 보고 또 보며 어디론가 하염없이 걸었다.
돈이 부족해 배는 쫄쫄 곯았지만 행복했다.
순천은 항구가 있는 여수와는 달리 더 깨끗하고 차분하였다.
전남 도청 소재지 광주는 여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건물과 대로, 엄청나게 많아 보였던 인파에 나는 압도되고 주눅 들었다.
혼자 여행을 마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 오는 차 안에서 나는 다짐했다.
‘그래, 어서 어른이 되고 이렇게 큰 바깥에서 살아야지.’
어떤 날은 지리부도를 펴 놓고 세계를 떠 돌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폈다.
이 나라는? 저 나라는?
나는 외국에도 관심이 갔지만 남극, 북극, 적도 같은 특정 위도선에도 호기심이 컸다.
과연 이런 곳은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어떻게 다를까?
지도상에는 다섯 개의 중요한 위도선인 적도, 남극, 북극, 남회귀선과 북회귀선이 있다.
아프리카 여행을 하다 보면 그 중 세 개의 위도선을 만날 수 있다.
동부 케냐 국토의 중앙부를 지나는 적도, 사하라 사막을 지나는 북회귀선, 나미비아 사막 여행 중 나오는 남회귀선이다.
북회귀선을 지나보진 못했지만 사하라 사막 생활 때 캠프가 있던 곳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북회귀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 지금도 아쉽다.
지도상으로만 보았던 상상 속의 위도선에 섰을 때 기분은 묘하다.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고 오직 선(線) 하나로 경계를 나눌 뿐인데도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표현처럼 ‘경계라는 것도 상상 안에 있을 때가 아름다울지’ 모를 일이다.
적도가 북반구와 남반구를 나누는 위선이라면, 남북위 23도 27분을 지나는 남북회귀선은 온대기후와 열대기후를 구분하는 기준선이다.
더불어 헨리 밀러의 소설 <남회귀선>과 <북회귀선>도 따라온다.
우리나라가 동지일 때 남반구는 하지가 되고 태양은 남반구에서 가장 높은 위도까지 올라간다.
동지와 하지는 6개월의 시차를 가진다.
케이프타운에 펭귄이 사는 마을은 사이먼스 타운이다.
그곳은 아문센과 남극을 향한 경쟁을 펼쳤던 영국인 스콧이 1910년 6월 탐험대에 합류해 남극으로 향한 항구이다.
이곳으로부터 남극은 6천 2백km 떨어져 있지만 스콧의 탐험대가 장도에 오른 곳이다.
나는 사이먼스 타운을 지날 때마다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세상 끝 남극을 떠 올린다.
아프리카 여행 중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적도와 남북회귀선을 지나보는 것,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 사족으로;
엄마 그리고 아버지.
집 나설 여비를 마련키 위해 이번 주에는 정체불명의 도화지 구입이 필요 했고,
다음 주에는 켄트지를 산다고 허위 부당 비용 청구를 한 작은 아들을 용서해 주세요.
나의 엄마와 아버지는 그걸 알고도 눈감아 주셨다는 것,
먼~ 훗날 알게 되었어요
케이프타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