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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이민자들
by 땡스아프리카 | Date 2015-06-03 22:14:38 hit 2,233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남아공을 '무지개의 나라 (Rainbow Nation)'라고도 부른다.

아파르트헤이트로 찢겨졌던 여러 인종의 화해를 위해, 자유와 평등한 국가 건설의 공동 목표를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분포가 다양한 남아공의 여러 민족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최근에는 러시아, 그리스, 타이완, 다른 아프리카 국가 등에서 그들의 고유한 문화와 배경을 가지고 남아공을 찾는다

오래 전부터 남아공에 유입된 주류 이민자들은 어떠했을까? 

 

포르투갈 : 1488 바르톨뮤 디아스는 인도로 가는 항해 도중 폭풍으로 남아공에 첫 발을 내딛는다. 그는 유럽인 최초의 항해자였다. 그 후 20세기 초 많은 마데이라(Madeira) 섬 출신 포르투갈인들이 남아공 해안으로 들어와 어촌을 이루었다. 1976년 아프리카 식민지 정책 폐지 후 남아공으로 이민자는 더 늘어났다

 

네덜란드 : 첫 케이프타운 유입은 1650년대였으며 17~18세기 때 더 많은 이민자가 들어 왔다자유로운 거주와 자신의 땅에 대한 큰 기대로 이주한 그들을 아프리카너(Afrikaner)라 불렀다. 그러나 19세기 초 영국인들의 유입으로 그 꿈은 접어야 했다. 1830~1840년대에 영국에 밀려 척박한 내륙으로 대 이주를 하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세워 나갔다. 현존하는 케이프 더치(Cape Dutch) 양식의 빌딩은 탁월한 그들의 건축 기술이다.

 

프랑스 프랑스의 신교도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었던 낭트 칙령 폐지 후 종교 박해를 피해 1688 위그노들이 찾아 들었다. 이들은 프랑스훅 (Franschhoek) 지역에 농사와 포도 재배 기술을 알렸으며 남아공의 포도농사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지금은 그들의 고유 문화는 거의 사라졌고 프랑스 식의 훼밀리 이름인 Du Plessis, Le Roux, Marais, Du Toit 정도가 남아 있다

 

영국 1795년 군인을 처음 파견 하였으나 곧 철수 후 1806 5천명 정도의 이주자가 다시 찾았다. 그 후 1820년 대규모 영국인들이 유입했다. 그들은 케이프에 거주하던 네덜란드인들의 삶의 터전을 위협하고 케이프 지역을 떠나게 했다. 1840~1850년대 본국의 이민 정책으로 콰줄루 나탈 지역에도 영국인은 들어 왔다. 남아공의 다이아몬드, 금과 석탄의 발견은 영어권 이주자를 더 늘어나게 하였다. 영국은 네덜란드와 벌였던 보어 전쟁(Boer War)에서 승리 후 1902년 남아프리카를 손에 쥐었다.

 

독일 19세기에 콰줄루 나탈 지역으로 선교사, 농부, 기술자들이 들어 왔다. 1856년 크림전쟁 후에는 군인들이 용병으로 케이프 주에 유입 하였다현재의 이민 4, 5세대는 모국어을 사용하지 못하며 대부분 백인 문화에 흡수 되었다. 콰줄루 나탈에 Hermannburg, Wartburg, 웨스턴 케이프의 Wupperthal은 대표적인 독일인들의 커뮤니티가 있는 곳이다.


유대인 케이프 식민지의 정착 초기에는 소수의 유대인만이 있었으며 비 기독교인은 추방 대상이었다. 1803년 종교 자유화 이후 많은 비지니스 맨, 무역, 금융 전문가들이 이주 했다. 이들은 남아공의 무역이 번성하게 하는데 일조 하였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더 많은 유대인이 들어 왔다. 이들은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 하였으며 대표적인 인물로 Helen Suzman, Joe Slovo, Denis Goldberg가 있다

 

인도 대부분의 인도인은 1860년대 초 인도양의 더반 지역에 사탕수수 노동자로 들어 왔다이 후 1920년대 인도의 구자라트 주()에서 'Passenger Indians' 라고 불리는 상인들이 대거 흘러 들어 왔다세계에서 가장 큰 인도인 혈통이 남아공에 있다.  80%에 달하는 115만명 정도의 인도인이 콰줄루 나탈 주에 있으며 타밀(Tamil)과 힌디어를 사용 한다그들은 자신만의 고유 문화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마하트마 간디는 1893년부터 1914년 까지 남아공에 머물렀다.  

 

이태리 : 1860년대 이탈리아 독립운동 때부터 남아공으로의 이민은 있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는 포로들이, 그 이후에는 숙련공엔지니어 등이 유입 되었으며 이들은 남아공 국가 기반 시설 건설에 일조 하였다. Du Toit's Kloof Pass, 오렌지 강 수로 공사, 콰줄루 나탈 철도 건설에 참여 하였다. 최근엔 음식관련 사업에 관심을 보이며 이주 하고 있다.

 

중국 : 동인도 회사의 인력으로 소수의 죄수와 노예들이 유입된 때가 17세기였다. 1880~1920년 금광 노동자가 대거 찾아 왔으나 거의 본국으로 돌아 갔다. 그 귀국하지 않은 자들은 장사를 시작 하였다. 인종차별 시대에 이들은 컬러드 피플 (Coloured people)로 분류되어 차별을 받았다. 항구도시 포트 엘리자베스에는 큰 차이나 타운이 있다. 현재 100만명 넘는 중국인이 남아공에 거주 하고 있으며 최근 20년 사이 사업가와 투자자의 이주가 늘고 있다.

 

남아공은 다양한 이민자들과 그들이 가져온 고유한 문화들이 합류 된 나라이다

이는 인종의 다양성을 말해 준다.

그들이 사는 공간에 그들의 역사가 하나하나 쌓이면서 남아공의 역사를 만들어 냈다

이 역사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영국, 독일, 유대인, 인도, 이태리중국인들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어디 까지나 남아공의 역사이다.

 

케이프타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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