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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제패를 꿈꾼 세실 존 로즈(Cecil John Rhodes)
by 땡스아프리카 | Date 2015-07-03 23:27:24 hit 2,390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

그들은 바람이 어루만지고 있는 발 강의 풀 위에 이슬 방울들처럼,

혹은 시골길의 서리처럼 반짝이고 있는 다이아몬드를 보았다." 

- 그레이엄 매스터턴 《킴벌리의 다이아몬드》에서.

 

19세기 캘리포니아는 황금의 열풍으로 달아 오른다.

세상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 바람은 남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풍으로 이어졌다.

세계 다이아몬드의 역사에서 빼 놓아서는 안 되는 인물이 하나 있다.

이름은 세실 존 로즈 (Cecil John Rhodes).


영국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키 크고 메마르며 허약하고 부끄러움을 잘 타는 소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질병과 천식을 가지고 있던 로즈를 형이 목화 농장을 운영 하고 있는 따뜻한 남쪽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보냈다. 건강 회복을 기대하며 로즈가 남아공으로 찾아온 당시 나이는 17살 이었다.

로즈는 숙모로부터 돈을 빌려 생활하다 형의 농장이 실패하자 형과 함께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는 킴벌리(Kimberly)로 떠났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만난 그는 숨어있던 열정과 야심으로 철저한 사업가로 변모한다. 

기업가적 기질을 발휘해 자신의 왕국을 세우기로 한다.

본국의 로스차일드 은행가의 융자를 받고 다이아몬드 회사를 독점 운영하며 고가로 팔았다

10년 만에 남아공 최대의 킴벌리 (Kimberly) 광산마저 사 들이고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의 90%를 지배하게 된다.

마침내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회사인 드 비어스(De Beers)를 그의 나이 35살에 세운다.

 

부의 축적과 함께 정치적 야망을 숨기지 않았던 로즈는 케이프타운의 수상으로 임명된다.

궁극의 꿈은 대영제국의 새로운 영토 획득과 식민지 정착 이었다.

다른 국가인 포르투갈과 독일, 네델란드(보어)인들의 중앙 아프리카 침투 확장도 저지 하는 것이었다.

본국으로부터 토지 광산 채굴권 허가를 받아 거침없는 영토 확장에 나섰다.

자신의 이름을 붙인 땅 '남부 로디지아 Rhodesia (현재의 짐바브웨) ' '북부 로디지아(현재의 잠비아)'를 손에 쥐었다.


달리는 기차처럼 멈출 줄 모르던 그의 야망은 아프리카 대륙에 대영제국의 깃발을 펄럭이게 하는 것이었다

붉은색 선을 따라 케이프에서 카이로까지 기차를 달리게 하는 것,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저 북쪽 지중해의 도시 이집트의 카이로까지 철길을 놓는 것이었다.

철도는 통치를 쉽게 하며 전쟁 시 접근의 편리성과 무역 촉진의 필수라고 생각 하였다.

 

프랑스가 아프리카 대륙을 서에서 동으로 지배하려는 야심이었다면 영국은 남에서 북으로 잇는 국가들을 지배하고자 하였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북으로 가는 길을 개척 하는 것이었다.

백인들이 자리 잡고 사는 것이 목표였다.

더 많은 자신들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언제든지 이주 목적에 맞게 성경(Bible)도 인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을 한번 끌어 들이기 시작하면 결코 다시는 그들을 내쫓아 낼 수 없다는 것은 잘 알았지만 모든 걸 내주고 말았다.

 

로즈는 앵글로 색슨 민족성의 우수성을 믿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인종이라고 유언과 유서에도 남겼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의 백인 식민 자치 향상에 힘을 쏟았으며 원주민을 밀어내는 인종 차별에도 한 몫을 하였다.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에서 공부한 그는 옥스포드 시스템을 높이 평가 하였다.

최초의 국제적인 학문 프로그램인 로즈 장학 재단 (Rhodes Scholarship)을 옥스포드 대학에 설립한 것도 그런 이유다.

남아공의 그래함스타운(Grahamstown)에는 그의 이름을 딴 로즈 대학교가 있다.

 

맹렬히 자국의 영토를 확장했던 제국의 창설자들 가운데는 동성애자가 적지 않았다.

여성과 함께 하기를 혐오하던 로즈는 하녀조차 거부한 것으로 악명 높았다.

케이프타운의 테이블 마운틴 아래에는 그의 개인 정원 이었던 커스텐보쉬(Kirstenbosch Botanical Garden) 야외 식물원이 있다. 그 산자락에 '로즈 기념관(Rhodes Memorial)' 이 있다.

그가 숨을 거둔 곳은 케이프타운의 뮤젠버그(Muizenberg) 바닷가의 조그만 정원이 딸린 집이었다.

너무도 젊은 나이, 49세에 눈을 감는다.

사후에도 아프리카 땅에 대한 집착이 남아서 일까

장례식 후 시신은 이곳 케이프타운에서 기차를 타고 짐바브웨로 옮겨졌다.

 

나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그의 박물관을 가끔 찾는다.

로즈의 시신을 실은 기차가 케이프타운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그의 마지막 길은, 삶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져다 준다.

그는 죽어서도 모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가 오갔던 아프리카 땅 짐바브웨의 한 언덕 위에 묻혀있다.

그토록 가고자 원했던 북 아프리카 카이로 쪽으로 머리를 향한 채로.


오늘날 로즈는 아프리카 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케이프타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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