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욱 선생님 내외분께

케이프타운을 다녀 가신지 한 달이 되어갑니다. 

저희 집에 오셨을 때 막 새순을 돋기 시작했던 마당의 플라타너스도 이젠 몰라볼 정도로 무성해 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일상은 늘 그렇지만 요즈음도 바쁘시죠? 

찾으셨던 세인트 헬레나 섬 여행 기록과 사진을 정리하고 계시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아무리 여행의 시대라고 하지만 한 개인이 240개국 여행을 마무리 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 일을 해 내셨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선생님의 여행 방법은 여행지에 슬쩍 점만 찍고 오는 게 아니었죠. 

여행 전 철저한 준비, 방대한 자료 탐색과 공부 후 떠나셨으니까요. 

여행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 전천후 여행으로 강행군을 하시더군요.

선생님을 처음 만나 뵌 것이 9년 전, 2007년 케이프타운이었습니다. 

함께 다니며 저의 이야기가 끝나면 질문과, 무언가를 받아 적으시고 녹음까지 하셨던 기억입니다. 

떠나실 땐 저에게 “객지에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꿋꿋하라”는 글과 서울 88올림픽 기념 우표세트를 남기고 가셨죠. 

짧은 만남이었지만 우리의 긴 여운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몇 해전 한국 방문 때 선생님의 사무실을 찾았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넓은 책상에 놓인 세계지도, 사방에 꽂힌 역사, 문화, 여행, 영화, 연극, 음악 서적과 음반들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더욱 놀라움은 한 켠에 쌓여있는 육필로 채워진 엄청난 여행 기록과 공책들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아, 여행을 그냥 다니시는 게 아니라 저렇게 다니셨구나’ 하는 경외심이 일었습니다. 

저의 눈에 선생님의 여행은 고행(!)과도 같은 과정을 통해 스스로 즐거움을 찾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답니다. 

이번 세인트 헬레나 섬 여행이 240번째 방문국이라 선생님 뿐 아니라 저에게도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곳이 아프리카니까 말입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요하네스버그에서 항공을 이용하는 여행이었지만, 

비행장 안전 문제로 케이프타운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셔야 했습니다. 

가는 데만 꼬박 5박 6일이 걸리는 만만치 않은 시간이었지만 선생님의 호기심과 열정 앞에 그건 별 문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배 멀미로 주사까지 맞아야 했던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해 하셨으니까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받아 왔습니다.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하는 눈, 저에게 주시는 격려와 사랑은 어찌 갚아야 할지요. 

그러고 보면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네요. 

또 하나 저는 선생님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편한 방식으로 성(城)을 구축하지 않고 사시는 모습이랍니다. 

이는 선생님의 철저한 여행 방법을 보면서 느낀 점입니다. 

그 철저함이 저에겐 아름다움으로 보였으니까요. 

이제는 지금까지 나온 두 권의 책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더 쓰고 싶다고 하셨죠? 

이 또한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거듭 240개국 방문 축하를 드립니다.

선생님 내외분의 건강을 빕니다.

* 노트 : 

글의 주인공은 KT 사장 은퇴 후 지금은 여행가로 활동 중이신 이해욱님 입니다. 

방문한 240개국은 UN 국제표준화기구(ISO)가 독립 국가로 분류한 나라들 입니다. 

2010년 192개 국가를 여행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인정 받아 한국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이후 6년 만에 ISO가 정한 240개국을 모두 여행하셨습니다.

희망봉에서 김은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