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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 Nkosi Sikele'I Africa> 남아공 국가(國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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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스아프리카 | Date 2017-05-03 21:43:24 | hit 2,510 |
한 나라의 정체성은 그 나라의 풍광도 한 몫 한다.
우리의 애국가가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듯 다른 나라의 국가(國歌)도 자연을 칭송하는 메시지를 담은 경우가 많다.
반면에 남아공의 국가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는 ‘신의 축복’을 바라는 간절함을 담았다.
과거의 서글펐던 역사적 경험이 영향을 주었다.
탄생은 1897년 감리교 학교 선생님과 학생이 만들어 교회 찬송가로 불렸다.
이 시기는 남아공의 다이아몬드와 금을 놓고 네덜란드와 영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때였다.
2년 후에는 남아프리카 전쟁(보어전쟁)이 발발하였다.
광산을 독점한 백인들은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흑인들의 삶은 노예나 다름없는 밑바닥이었다.
백인들은 인종을 차별하고 흑인들을 구속했다.
그 암흑에서도 위안을 주었던 노래가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였다.
비참하고 참혹한 현실에서 하느님을 믿는 이라면 백인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언젠가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신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것 외에는 그 무엇이 있었을까?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켜 주실 거라는 믿음의 표현이었다.
흑인들은 어려울 때 마다 모여 이 노래를 합창했다.
1994년 넬슨 만델라 민주정부 탄생 후 가사에 손을 보고 남아공 국가國歌로 부활하였다.
인종간 화합의 의미로 5개의 주된 부족 언어인 코사, 줄루, 소토, 아프리칸스와 영어로 조합되었다.
나의 어린 시절 엄마와 아버지는 약주 몇 잔에 거나해지곤 하셨다.
그리고 노래를 하셨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연분홍 치마가 봄 바람에 휘날리더라’ 같은 유행가를 끝도 없이 부르셨다.
돌아보면 참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 노래에는 슬픔과 애환이 깃들어 있었다.
그때는 ‘왜 저러시나?’ 하고 그런 모습이 싫었다.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이 어찌 하나 둘일까?
나날의 생활 한 가운데에서 그런 노래라도 찾아 헤매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남아공의 국가도 신의 사랑과 위안을 갈구하는 흑인들의 탄식에서 나왔다.
민중 해방 찬가를 거쳐 국민적 노래가 되었다.
‘월드 베스트 국가(國歌) 탑 10’에 들어간다.
국가 간 경기 전, 흑인과 백인이 어깨동무 하고 합창하는 모습,
위로, 더 위로 치고 올라가는 마지막 소절에서는 벅참이 느껴지고 가슴 찡해지고 만다.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
(가사의 일부)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재하소서
우리의 나라를 지켜 주소서
전쟁과 가난을 멈추어 주소서
우리는 하나되어 서야 합니다
자유 안에 살게 해 주소서
우리의 땅! 사우스 아프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