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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의 고향, 탄자니아 잔지바르 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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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스아프리카 | Date 2018-12-02 14:42:20 | hit 2,158 |
딸은 수시로 락 밴드 퀸의 노래를 흥얼대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그들의 음악을 듣기도 한다.
아이가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세상 사람 중에서 단 한 사람을 만나게 해 준다면 그를 만나보고 싶다'니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프레디 머큐리는 동아프리카 인도양의 잔지바르 섬에서 1946년 출생했다.
그의 가족은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인도 계 혈통이었다.
당시 잔지바르 섬은 영국 식민지였으며 1964년 탕가니카와 연합하여 탄자니아 공화국이 되었다.
영국에서 독립한 잔지바르는 공화정을 수립하였고 그 여파로 아랍인, 인도인, 페르시아인들이 한꺼번에 국외로 추방당했다.
그때 머큐리 가족도 재산을 몰수 당하고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머큐리는 생전에 자신의 고향이 잔지바르였다는 사실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한번은 고향의 동창들이 공연을 마친 퀸을 찾아 갔지만 “나는 당신들을 모른다”고 말할 정도였다.
고향에서 지냈던 시절을 잊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동부 아프리카 탄자니아는 나에게 특별한 여행지다.
그 해 여름 케이프타운에서 4륜 구동을 몰고 아프리카 종단 여행에 나섰던 친구들과 다시 뭉쳤던 곳이 탄자니아였다.
나는 대초원의 사파리보다도 잔지바르 섬을 꼭 찾고 싶었다.
그 섬에는 수메르인, 아시아인, 인도인, 중국인, 네덜란드인, 영국인, 포르투갈인들의 거쳐간 흔적이 있고,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다르에스 살람에서 타고 온 배에서 섬에 내리자 선착장 주변에는 머큐리 이름이 들어간 카페가 눈에 들어 왔다.
하지만 그 섬의 주민들은 그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 몰랐다가 많은 사람들이 머큐리 집을 찾아오니 서로 여기가 머큐리가 태어난 곳이라고 경쟁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잔지바르에는 ‘머큐리의 집’이라고 하는 장소가 여럿 있다.
퀸은 1984년 남아공의 선 시티 무대에도 섰다.
당시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부여서 뮤지션들은 남아공을 찾지 않았지만 퀸은 방문해 인종차별 밴드라는 지탄을 받기도 했다.
1984년 남아공의 백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고 자부하던 시절이었으니 그 무엇인들 하지 못했을까.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노래 <I want to break free>가 넬슨 만델라가 감옥에 갖혀 있을 때 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하던 조직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대표곡으로도 불렸다.
잔지바르는 아프리카 탐험의 문을 연 영국 출신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마지막 행로이기도 했다.
1873년 잠비아에서 사망한 리빙스턴의 시신은 잔지바르 섬으로 운구 되었다.
그의 시신은 영국으로 송환 후 1874년에 웨스트 민스터 수도원에 매장 되었다.
머큐리의 가족이 믿었던 조로아스터교 신도를 ‘인도의 유대인’이라 불렀다.
머큐리의 가족처럼 머큐리는 아프리카에서 인도로, 영국으로 이방의 땅을 떠돌던 영원한 보헤미안이었을지도 모른다.
<보헤미안 랩소디>도 그런 개인적 트라우마와 관련된 이야기를 넣지 않았을까?
케이프타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