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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인종분리 정책(아파르트헤이트) 질문 4가지 (2 of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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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스아프리카 | Date 2017-02-15 17:27:18 | hit 2,4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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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3 : 민수의 질문 3
아파르헤이트 정권 때 폭동이 자주 일어났다고 했는데 그 중에 제일 영향이 컸던 폭동 3개를 알고 싶습니다.
샤프빌(Sharpeville) 폭동이 그 중 하나 입니까? 그런 폭동들은 왜 일어났고, 어떻게 되었고, 남아공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A : 답변 3
우선 ‘폭동’이란 단어는 인종분리 정책에 투쟁하였던 아프리카인들에겐 적합한 단어가 아닐 것이다.
강경 아프리카인들은 1958년 범아프리카 회의(Pan-Africanist Congress : PAC)라는 조직을 만들고 아프리카인들의 아프리카 건설을 주창하며 투쟁에 나섰다.
(1) 첫 번째-샤프빌 학살(Sharpeville massacre) 1961년 3월 21일
PAC의 통행법 반대(Anti-Pass Laws) 시위와 ANC(African National Congress 아프리칸 민족회의)는 전국적인 불복종 운동을 펼쳤다.
그 방법 중 하나로 통행증을 불에 태우며 저항 표시를 했다.
샤프빌에서 경찰의 발포로 69명이 사망하고 180명이 부상하는 유혈 사태가 있었다.
이후 PAC와 ANC는 불법화 되었고 흑인 운동은 폭력화 되기 시작하였다.
1962년 넬슨 만델라는 체포 되었고 종신형에 처해진다.
(2) 두 번째-소웨토 사태(Soweto uprising) 1976년 7월 16일
1976년 백인 정부는 아프리칸스어를 아프리카인들의 학교에서 교육 수단으로 사용토록 공포했다.
이 법은 흑인 젊은이들의 저항에 불을 댕겼다.
아프리칸스어는 압제자의 언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Soweto(요하네스버그 남서지구 The Southwestern Township of Johannesburg)에서 대규모 저항이 일어났다.
이 사태는 전국적으로 퍼져 약 700여명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속출하였다.
1960년대의 샤프빌 사건이 부모들의 저항이었다면 소웨토는 자식들의 반발로 평가되고 있다.
이 사태로 국민당은 흑인들에 유화 정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3) 세 번째-위텐하게 사태(Uitenhage shooting) 1985년 3월
1985년3월 이스턴 케이프에 있는 위텐하게에서 샤프빌 학살 25주면 기념식 후 경찰 발포로 20여명이 사망했다.
이 후 각지에서 소요가 잇따랐으며 정부는 인종간의 결혼 금지 및 공공장소에서의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유화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민당 내 강경파 압력에 밀려 다시 강경 노선으로 선회했다.
1985년 강력한 비상계엄(State of Emergency)을 선포하였고 수천 명이 감금 사망했다.
남아공 정부의 강공 정책은 국제사회로부터 강력한 비난과 제재를 받는다.
1986년 미국과 EC가 남아공에 대한 신규 투자 및 교역 금지 조치를 결의하였고 세계 각국도 제재 조치에 동참했다.
1989년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동유럽과 서유럽을 갈라 놓은 ‘철의 장막’이 사라졌다.
소비에트연합의 공산주의 체제가 와해되고 미소간의 냉전도 끝났다.
이런 국제적 급변은 마침내 남아공 소수 백인 정권에도 종말을 촉진했다.
1990년 민주 투사 넬슨 만델라가 석방 되었다.
1993년 넬슨 만델라와 백인정부의 마지막 대통령 클레르크는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위에서 보듯이 남아공 인종차별 종식은 아프리카인들의 지속적인 저항, 국제사회의 공동 제재
그리고 당시의 국제적인 기류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Q : 민수의 질문 4
마지막으로 아파르헤이트 정권 때 흑인들을 강제이주 시켰다고 알고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그 지역들이 케이프 플랫(Cape Flat)과 디스트릭트 식스(District 6)로 알고 있습니다.
흑인들은 어디에서 살다가 그 지역들로 옮겨졌는지?
칼라드 피플(Color people : 유색인)은 어느 지역으로 갔는지?
백인들은 또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습니다.
A : 답변 4
남아공의 인종분리 핵심 칙령은 세 가지이다.
- 유색 인종을 백인 거주지로부터 쫓아내는 '집단 거주 지역법(The Group Area Act)',
- 백인과 유색인간의 교제나 결혼, 성행위를 금지하는 '부도덕법 (Immorality Act)',
- 인종을 백인, 혼혈인, 인도인, 흑인으로 등록하는 '인구 등록법(The Population Registration Act)'이다.
흑인들은 흑인 자치구역인 Township에 강제 이주 되었다.
Township은 환경이 열악하며 변두리 지역에 있다.
District 6 지역은 유색 인종들이 살던 곳이었으나 1966년 백인 지역으로 선포 후 중장비로 강제 철거 해 버렸다.
이 지역에 살던 약 6만여명의 유색인종들이 쫓겨 밀려 간 곳이 현재의 Cape Flat이다.
'Cape Flat'이란 그 지역에 산이 없고 높낮이가 없는 평지라 그렇게 부른다.
주민 거의가 유색 인종들이다.
흑인 민주 정부가 들어서고 1994년 오픈한 District 6 Museum이 당시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백인들은 테이블 마운틴 산자락을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해 살았다.
케이프타운의 마을과 지역을 들여다 보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피부색을 추측할 수 있다.
남아공의 서글펐던 인종분리의 산물이 아닐까?
민수야
더 궁금한 것 있으면 글 보내라
보고 싶다는 말.
안녕.
케이프타운에서 작은 아빠가